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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글쓰기를 하고 싶었던 사람의 글쓰기 시작

by 여목_ 202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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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고민에 빠졌다. 순식간에 열 가지도 넘는 일을 처리해야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자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 업무의 너머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문제는 지금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시한이 정해진 일은 어떻게든 결졍해서 담당자에게 알려주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내 실력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서 골방에도 있어보고 바깥에도 나가보고 커피숍에도 들어가 앉아 고민할 꺼리들을 하나씩 풀어놓고 생각에 잠겼다.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하나씩 하나씩 적어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해야할 일, 하고싶은 일, 회사 대표로서 할 일, 업무 처리를 위해 해야 할 일, 미비된 작업들, 일하는 프로세스 만들기, 의사소통에서 오는 문제점 해결하기 등등 손에 잡히는 노트에 지금 내가 뭘 해야하는지 떠오르는 것들을 무작위로 적었다. 더 생각이 나지 않을 즈음이 되어 적어놓은 것들을 다시 분류했다. 계속 분류를 했다. 우선순위고 뭐고 할 것들을 다 끄집어 내니 내 역할에서의 할 일이 모두 혼재되어 있었다. 

이로인해 나는 정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을 체계있고 규모있게 하기 위해서는 일을 시스템적으로 구축하는 게 필요했는데 나는 그러한 업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되면 하고 안 되면 미루고 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이것은 확실히 사업을 하는 데 좋은 성향은 아니다. 그렇다고 천천히 느긋하게 일 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내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 대문에 나는 최대한 안전한 논리와 타당한 이유로 직원들을 설득하고 방향성을 제시해 주어야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도 모르는 걸 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선은 할 일을 도식같이 메모로 남기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들을 따로 모아보고 할 일을 정리하고 잘 모르겠는 개념은  스스로 정리를 해 보았다. 그러면서 노트 구석에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어라든지 생각이라든지 무작위로 적어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떠돌아 다니는 단어는 수천만가지였지만 정작 글자로 담으려고 하니 한 글자도 적을 수가 없었다. 생각은 이 사안에서 저 사안으로 순식간에 넘나들기도 했고 집중이 되지 않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지 알지만 그것이 잘 컨트롤 되지 않았다. 외부 자극이 생기자마자 곧바로 주의를 빼앗겼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고 전화 소리만 들려도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면서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집중하여 원래대로 돌아오는데는 수십분이 걸리기도 했다. 생각을 다잡고 정신을 집중하여 한 사안에 대해서 오래 싱각하는 능력이 나에겐 없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각은 단편적이었고 정체되어 있으며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30년도 넘게 이 상태였다. 단편적인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나는 생각이 짧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실수 투성이로구나를 매번 자책했다. 짧은 문장들만 나열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가 뭔가 나도 잘 모르겠어서 지금 드는 생각을 머리속에 남기지 않고 글로 적어보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적어보았는데 생각이 시각화 되어 내 생각을 글로 읽을 수 있었다. 몇 번 해보고 나니 시간이 지나도 내가 생각했던 것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머리속에서 잔뜩 화가 난 단어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모를 때 글자로 적어주면 얌전히 고분고분하게 글자로 박혀있게 되는데 그것과 동시에 머리속에서는 그 단어가 빠져나가 빈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머리속에 떠도는 글자마다 생각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생각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짧은 순간에 들어온 생각을 글자로 빠르게 옮기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적은 내 글에는 생각의 흐름이 담겨있었다.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는 생각이었지만 글자로 적혀있으니 시간이 지나도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래서 다음 스텝으로 생각을 발전시켜볼 수 있었다. 

글쓰기는 느린 생각이었다. 생각하는 것은 번개같이 빨랐고 이리저리 휘몰아쳐 돌아다니기 때문에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반면 글쓰기는 느리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가지 글자 외에는 쓸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글자를 빨리 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나중엔 깨달았다. 생각이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면서부터는 생각이 글씨를 쓰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생각은 글쓰기 속도와 싱크가 되어 천천히 느린 생각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몇날며칠 너저분하게 펼쳐놓은 수 많은 단어들을 하나씩 조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노트 위에 빼곡히 쓰고 다시 쓰면서 사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생각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노트는 수십페이지가 넘어가고 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는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아 생각을 정리하는 건 이런거구나 새로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노트를 몇 권을 쓰고서야 생각을 정리하는 게 어떤것인지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일에 대한 생각을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을 헤집어 보고 내 입장이 어떤지를 객관적으로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문장력을 구사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내 생각이 논리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찾고싶었던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생각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생각을 생각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는 과정을 글로 담아두는 게 중요했다. 글로 담아두고 다시 곱씹어 읽으면서 다음 스텝으로 생각을 향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글쓰기 시작은 이렇게 업무중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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