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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글쓰기의 위력

by 여목_ 202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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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 생활을 많이 안정시켜주었다. 사업 때문에 심란하던 시절, 나는 홍대 경의선 숲길을 혼자 거닐었다. 한 겨울에는 외투를 입고 털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공원을 돌아다녔다. 여름에는 땡볕을 피해 그늘로 그늘로 걸어 다녔다. 공원 맨 끝에 항상 앉는 자리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앉아있으면 옆자리 의자에 앉아 항상 바라보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핸드폰도 안 보고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들, 강아지들,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냥 생각이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머릿속은 온통 잿빛이었고 희뿌연 연기나 먼지 같은 것들이 한가득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그럴 땐 나무를 바라보고 한참 앉아 있는 게 도움이 됐다. 그냥 앉아서 멍하니 생각이 이리 떠오르고 저리 떠오르도록 놔뒀다. 그렇게 생각을 놔두면 별의별 생각이 다 뜨고 진다. 

그렇게 멍하니 수십분을 걷고 앉아있으면 차분해지는 마음이 생긴다. 먼지를 털어서 한참을 날리다가 이제야 좀 잠잠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생각을 할 차례가 됐다. 사업을 하다 보면 생기는 각종 사건 사고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음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고 언젠간 꺼내서 다시 정리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생각을 다시 꺼내지 않고 그 시 숙성시켜서 해결을 하지 않는 이상 마음속 응어리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런 것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뭐든 하나를 해결해 놓아야 마음이 편했다. 회피하거나 기분을 푼다고 하여 그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아이폰 메모나 노트에 지금 중요한 문제들을 여러가지 적어보고 그중에서 다시 한 가지 주제로 마음을 옮긴다. 그러고 나서 그 사안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어보기 시작했다. 산재한 일 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그 생각의 과정을 적어본다.

'이건 이렇게 해야하니까 지금 당장은 안 해도 되겠구나. 근데 이건 당장 해야 할 일인데 아직도 안 된 걸까. 이유가 뭐였더라. 내가 누구한테 시켰었지? 아직까지 안 된 이유가 뭘까. 가이드를 우선 제공해 줬어야 하나. 아니면 단순히 잊어버린 거였을까. 모르겠지만 다른 방향으로 제시를 해줘야겠다. 방법은 이렇게 하면 좋겠지. 잘 알아들을 것 같아. 그러고 나서 다음 일은 이걸로...'

생각을 글자로 적으니 위력이 생겼다. 읽고 또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보다 선명해졌다. 내 생각이 짧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나는 한 생각을 길게 가져가면서 숙고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 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가 사안을 오랫동안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하고 결론까지 가 본 적은 글쓰기를 시작하고나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생각이 짧았다. 한 가지 생각밖에는 못 했고 그것조차도 제대로 결론을 내리는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을 믿지 않는 편이었고 나를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글로 생각을 쓰면 여러번을 읽을 수 있고 기억을 잘 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생기게 된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모두 기록하고 생각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생각의 숙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정리되기를 기다렸다가 가장 심도있는 주제에 대한 생각을 노트어 적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유로은 생각들을 서술한다. 이렇게도 적어보고 저렇게도 적어본다. 이것은 글을 잘쓰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생각을 두껍게 만들기 위한 글쓰기이다.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에서 글쓰기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내 생각을 글로 적어두면 내 생각을 객관화하여 읽을 수 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나를 객관화하여 나를 비평하듯 내 글을 읽는 것은 나 곧 나의 생각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각의 헛점을 찾기도 쉽고 당연하게 벌어질 다음 일도 예측을 할 수 있다. 이는 합리적인 생각이나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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