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글도 써야 하고 미처 다 못 본 드라마도 봐야 하고 하다 만 영상도 편집해야 하고 내일 점심에 먹기로 한 파스타 조리법도 찾아놓아야 한다.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사용해야 할 현금영수증은 얼마를 받아야 하며 자동차세 미납 고지분은 언제 낼지, 책상 위에 충전 케이블을 예쁘게 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모든 것이 팝콘을 튀기듯 머릿속에서 동시에 폭발한다.
뉴스 사이트에 들어가서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몇 명까지 걸려서 치료를 받고 있는지도 수시로 체크하고 있고 관련된 커뮤니티의 반응도 궁금하니 하나씩 다 들어가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언제 읽을지 생각도 해 놓아야 한다. 완다와 거상(ps4게임)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놔두고 그러면 뭘 해볼까 하면서 관심사를 점차 넓혀간다. 이다지도 내 머릿속은 광활하고 할 일 투성이다.
처음 하나가 중요하다. 제대로 하나를 처리하는 것. 단 하나를 시작하면 그다음은 풀리는 법이다. 처음 성공했던 방법을 똑같이 반복하면 되니까. 노트를 펼쳐서 할 일을 뒤적거리다가 덮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하나에 대해서 써보기 시작했다. 그게 이 글이다. 쓰는 것은, 그리고 읽는 것은 내면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준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이야기하고 천천히 들어야 한다. 이미 마음이 너무 빨라져 있어서 들떠 있고 서두르거나 황급한 마음이 된다. 정작 그렇게 급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 생각은 해야 할 일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뉴스도 잠깐 보다가 페이스북에 글도 하나 남기려다가 카메라 배터리 충전을 하러 가기도 하고 간 김에 물 한 잔 마시고 주방을 정리하는 그런 식이다. 한 가지, 한 가지만 떠올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할 일 중에서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뭘 택해야 할까. 책을 한 권 집어 드는 것, 한 가지에 대해서 쓰는 것, 한 가지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 무엇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 한 가지만 오래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
결국에 한 가지를 하다 말면 그게 순간적으로 수 십, 수 백개로 늘어나 있다. 아 어제 하다 만 입금, 아까 정리하다 만 케이블들, 어제 마시고 놔둔 컵, 연락에 답변을 하지 못한 카톡 메시지들이 그렇게 쌓인 것이다. 그리고는 자책을 한다. 오늘도 하다 만 것이 너무나 많구나. 일을 적게 하고 하나라도 마무리를 잘 해내자는 다짐이 매일 쌓여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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