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과 소파등등을 모두 버리기 위해 5만 6천원을 주민센터에 내고 나오는데 조금씩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서점은 문을 닫은지 2년이 넘었고 처분은 이제서야 하게 되었다. 만약 2018년 6월에 레슨이 늘어나지만 않았다면 서점을 활발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트도 만들고 책도 쓰고 하면서 중고책 서점을 했을 것이다. 원래는 중고 서점을 하면서 동네 살롱을 꾸밀 작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레슨이 너무 늘어나서 서점을 관리할 겨를이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하겠지만 굳이.
대부분의 집기를 버린 후 용달에 책장을 싣고 송파 집으로 왔다. 지하에서 짐을 꺼내는데는 K가 도와줬다. 소파며 대형 테이블이며 꺼낼 수 있는 모든 집기를 다 꺼내고 책을 한데 모아 한 곳에 모아두니 다시금 쓰레기와 잡동사니 정도만 남은 공간이 되었다. 8년을 있었지만 미련같은 게 생기진 않는다. 지하 이곳저곳의 구석탱이에서 몰입하며 작업을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삶을 영위해 왔으니 그걸로 만족이지 그 이상이나 이하같은 건 없다. 더 잘됐으면 좋겠지만 내 실력 내가 아니까 그건 욕심이다. 이미 나는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그 곳에 정을 주기 시작했다. 물을 주면 관심이 생기는 법이다. 연남동은 물을 주기 보다는 푸석하고 갈라진 땅 같았다. 물도 들고 꽃도 피고 했을 것이고 그 공간에서 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연남동에 대한 나의 기억은 별로 없다. 공원 마지막 블럭 옆에 있는 의자는 그리울 것이다. 고뇌할 때 나와 함께 해 주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러 나가면 동네는 하루가 멀다하고 리모델링에 빌라 공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만 두런두런 살던 곳이 이제는 데이트 코스가 되어버렸고 손님이 오지 않는 덩그런 카페가 너무도 많다. 물론 잘 되는 곳들도 있긴 하지. 속이 타들어가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뭐가 있는 동네도 아닌 것 같은데 밀려드는 사람들 보고 들어온 매장들 보고 들어온 사람들의 순환이 심상치는 않다. 이런 곳은 사이클이 죄다 짧다. 자주가는 밥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나오며 이제 연남동을 떠난다고 이야기 했더니 너무나 아쉬워 하셨다. 아는 사람들은 죄다 떠난다고 말이다. 사장님네가 식당을 늦게 여신거예요. 저는 여기 8년이나 있었는걸요. 언제올지 모르겠다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인사를 하고 지내는 매장이 8년이나 됐는데 연남동에는 거의 없다. 아 후지필름 매장에는 내가 아끼던 진열장을 선물로 드리고 왔다. 나도 얼마전에 좋은 것을 받았으니 아끼는 것을 드린다. 주는 걸 잘 못 해서 무언가를 고르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혼자서 점심 저녁이나 먹으러 다니니 친해질만한 사람도 연남동엔 없고 정 붙이며 농담따먹기 한 사람도 없다. 아 한명 있(었)다. 동네 현자님. 그 분은 쑥쓰럼쟁이라서 이미 예전에 스스로 인사를 하고 집으로 잠적하셨다. 그러고보니 집도 어딘지 모르네. 서점을 계속 했으면 모르긴 몰라도 동네 사람들 수십명은 알고 지냈을거다. 재미도 있었을거고 사람 만나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낭만도 찾았을 거다. 요즘은 그런게 많지가 않아서 인간미라고 해야되나 그런걸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간미도 돈 내고 만나야 된다. 살롱을 찾아가거나 독서모임을 가거나 말이다. 뭐 그렇게 해서 자기에게 잘 부합하는 식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거지. 나도 그런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북트를 한거란 말이다. 북트는 이름이 너무 아깝다. 정말 이름 때문에 다시 할지도 모르겠다. 책과예술. Book and art. Bukt. 인생은 예술이라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아름답다.
양갱식당도 101술집도 다 떠났고 나도 간다. 홀로 남은 카페 가또 사장님은 사루카메와 둘이 남게 되어서 그런지 더 퉁명스러워진 것 같다. 그래도 츤데레라 지하에서 손목이 나가도록 짐을 싸고 있으니 커피를 두 잔 가지고 내려오셨다. 마음 씀씀이는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가기 전에 뭐라도 좀 준비해드리고 가야지. 그렇게 비를 맞으며 중요한 짐을 모두 싸서 용달을 불러 집으로 왔다. 홀가분한 생각이 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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