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는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비싼 돈 들여 집 안에 방음실을 설치하고 작업실을 꾸몄다. 아내의 휴직이 끝났고 올해부터 다시 출근을 한다. 아이는 방학이라 1월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곧바로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함께 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턴가는 음식이야 이제 좀 해볼 수 있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의 근거는 없지만, 왠지 해볼만 할 것 같았다.
자취를 꽤 오랫동안 했다. 그 때는 오로지 일 하는 것과 삶을 배우는 것에 모든걸 바치는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먹는 것이나 사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서 프리랜서를 하는 젊은 시절에도 집에서는 김치볶음밥 정도만 해먹고 살았다. 일주일 내내 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자, 음료수, 라면, 김치볶음밥, 3분카레, 3분짜장 정도만 해 먹었다. 해 먹는 걸 몰랐고 어떤 방식으로 맛이 나는지 원리도 모르니 해먹고 싶어도 버릴까봐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귀찮기도 했고. 결국 음식을 만드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오게 되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가니 뭔가 음식이라는 것은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 게 아닐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잇살 먹으면서 줏어들은 풍월이라는 것은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작년 말쯤부터 유튜브 요리채널을 구독하고 요리들을 조금씩 해 보았다. 백종원 선생님의 몇몇 요리들이 아주 와닿았고 직접 해 먹으면서부터 음식을 만드는 것에 즐거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맛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자취 이후 요리를 전혀하지 않았고, 회사일이 많으니 저녁 늦게나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집에서 내가 스스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우선은 아이가 너무 좋아하고 잘 먹는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데 매운것도 도전을 하면서 먹는 것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아침은 간단하게 과일이나 빵, 첵스초코를 먹었고 12시에 점심을, 6시에는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퇴근하는 8시에 맞춰서 음식을 준비해서 딱 챙겨주면 맛있게 먹고 빵또아를 만들어 먹었다. 식빵 사이에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즉석 빵또아를 만들어 먹는 것인데 저녁마다 온 가족의 인기 메뉴였다.
맛있는 것을 함께 만들어 먹는 재미, 가족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제공하는 서비스,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인상을 주었다. 음식을 만들 줄 모를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먹는 것의 만족감도 200%, 가족과 친해지는 친밀감 200%가 늘었다. 요리 실력도 역시 200% 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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