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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주부가 된지 1년 6개월 #2 요리의 탄생

by 여목_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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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부라면 본디 집안 청소와 정리정돈, 어린이를 돌보는 것과 음식이 기본이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음식이었다. 그 어떤 집안일을 가져다주어도 다 할 수 있지만 음식은 불가능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마흔을 넘기고나니 음식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해도 '저거 이렇게 저렇게 하는건가?'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후 설거지를 도우며 조금씩 알아낸 음식에 대한 만만함이었다.  

음식을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대 후반에 서울 살이를 시작하면서 독립을 했기 때문이다. 서울 살이에 피폐해져있던 20대 빼빼마른 곱분이 납자에게는 음식을 해 먹는 자체가 고행이었다. 그때는 오직 일! 일! 일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 외에 중요한 것이란 없었다. 그러니 집에서 무언가를 해먹는 것은 굉장히 대단히 하찮고 빨리 해치워야 하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중압감이었다. 그때 나를 먹여살린 것이 오뚜기다. 주말마다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는데 식재료를 사본 역사가 없으니 음식 재료를 사오는 게 아니라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오뚜기 3분 요리를 박스채로 사왔다. 그때까지도 음식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본적도 들은적도 없으니 음식이란 어머니가 부엌에서 지극정성으로 빚어내는 신화속 존재처럼 느껴졌다. 김치볶음밥을 태우지 않는 날이 없었고 기름을 얼마만큼 둘러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다. 내 부엌은 불구덩이 재앙처럼 탄내가 진동했다. 젊은 남자 혼자서는 집에서 뭔가를 해먹는 일이 적으니 점차 나가서 사먹는 일이 많아졌다. 일에 치이고 심리적으로 어려워질때 조차 이런식으로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으면 그것이 상처가 된다는 걸 안 것은 나이를 먹은 후였다. 20대 때 후회되는 것은 한가지다. 오뚜기 주식 살걸. 

작년초에 집으로 들어올때는 아이가 방학이어서 집에서 하루종일 놀고 있었다. 아내는 휴직중 잠시 출근으로 1월 한달간 회사에 나갔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을 집에서 해먹어야 했다. 밥 하는 건 전기밥솥이 해주니까 뭐 쉽지. 반찬도 장모님이 해두셨고 김치도 냉장고에 많고, 그러니 나는 간장을 두 숟갈, 맛술 한 숟갈 이런식으로 백종원 선생님의 말씀을 한방울이라도 놓칠까 조심해가며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찌개류를 좋아하니 꼭 내가 원하는 맛으로 해먹고 싶었다. 그렇게 맛을 내려고 안간힘을 쓴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한 방울씩 배운 음식을 여러번 되풀이 하면서 식재료를 어떻게 쓰는지 간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직 어머니의 신화속 손맛을 따라가기에는 멀었지만 권이가 먹고싶어하는 음식중에 아빠 김치찌개가 꼭 들어간다는 것으로 나는 일단 만족이다. (그래 당면 꼭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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